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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치의 세상 톺아보기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상을 떠났다.세간 뉴스에서는 그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선종이란 단어를 썼다.가톨릭에서 죄없이 죽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한다.서거, 붕어, 작고, 타계, 별세, 운명 등 죽음을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가 존재한다.그 중 몇몇 표현들은 특정한 카테고리의 인물들을 위해서만 사용된다.사회에선 죽음조차 평등하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난 왜 이 뉴스 제목들이 불편한 걸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과일 몇 개에 작은 청주병을 가지고 조상을 모시러 아버지는 매년 선산에 오르신다.조상들의 묘 근처에 이름 모를 사람의 무덤이 하나 있다.선산에 성묘를 갈 때 지나칠수 밖에 없기에, 봉긋한 그곳은 자연스레 어린 나의 주의를 끌곤했다.조부가 묻히시던 날부터 그 묘가 있다는 걸 기억하기에, 아무도..
상처는 때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뭘 그정도 가지고 그러냐"라는 말들이 가볍게 던져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말들이 닿지 못하는 폭풍 같은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게 된다.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진실이다. 상처가 아물기 시작할 때, 문득 내가 겪은 고통의 크기가 인생의 굴곡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해진다. 그저 작은 파도였을까, 아니면 깊은 계곡이었을까.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생각한다. '만약 평균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았다면, 우주는 언젠가 그 균형을 맞추려 큰 행운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그렇게 나는 로또를 산다. 자동 오천 원, 연금복권 오천 원. 번호를 고르는 수고조차 운에 맡기는 ..
몇 학년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화장실에서 나는 남들보다 울보라는 걸 깨달은 적 있다.해가 바뀌어 다른 기억이 흐릿해져도 그 상황만은 혜성처럼 되돌아온다.그리고 그런 기억은 몇년마다 항상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코를 찡찡거리며 되새김질하곤 했는데, 스스로의 나약함이 왜 이럴까 왜 나만 이럴까라는 목적없는 원망이 새록새록 떠올랐더랬다.불혹을 앞둔 나이가 돼도 울보는 고쳐지지 않았다.이야말로 나의 색이자 감기같은 동반자로 받아들일 수 밖에.아무리 세상이 발전해도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며, 자신만의 시간은 오롯이 자신만의 것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