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치의 세상 톺아보기
진실은 로그에 남지 않는다 본문
나는 프로그래머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코드를 짜는 시간, 회의에서 의견을 내고, 마감기한을 지키기 위해 새벽까지 자리를 지키던 시간들 모두는 단지 ‘일’이 아닌 ‘책임’이었다.
나의 커리어는 프로젝트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임해온 시간들의 누적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나는 언제나 그 진심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그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프로젝트에서 나는 팀워크의 이상과 현실 사이, 그리고 인간적인 실망과 부조리 사이의 틈에서 고통을 겪었다.
팀원 중 한 명은 명백히 일을 하지 않았다.
명백히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회피와 침묵, 그리고 시간만을 죽이는 모습이 지속되었다.
나는 떠밀리듯 더 열심히 해야 했다.
만든 결과물이 이 팀의 성과를 대표할 수 있기를 바랐고, 내 이름을 이끄는 커리어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길 바랐기에.
하지만 세상은 단순한 방정식이 아니었다.
노력과 성과, 정의와 보상이 비례하지 않는 상황은 생각보다 잦았고, 그 프로젝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문제는 단지 태업이었다면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업을 한 그 사람이 오히려 나에 대해 험담을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감정은 무력감 너머로 깊이 가라앉았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 속 인물처럼, 나는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고발당하고, 정당성을 증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죄책감을 강요받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사람마다 열심히 한다는 기준이 다른 것일까?’
이 질문은 반복해 생각한 적도 있었다.
실제로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사회성 곤충으로 알려진 개미조차도, 일하는 개미 중 20~30%는 항상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조차 자연의 질서라면, 내가 겪은 상황도 자연스러운 해프닝 중 하나로 넘길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마음이 조금은 편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은 개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이 있고, 책임이 있고, 동료라는 이름의 신뢰가 있다.
그것이 무너질 때, 나는 왜 일하는가에 대한 질문 앞에 선다.
왜 홀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자신에게만은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고, 아마추어같은 사람들에 피해를 받고 싶지도 않다.
내 노력은 때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때로는 왜곡되지만, 그것이 내가 진심으로 살아온 증거임에는 변함이 없다.
카프카의 그림자 속에서 나는 여전히 조용히 일한다.
현실 속에서 K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이 현실을 잘 안다.
언젠가 진실이 드러나리라는 동화와 같은 기대는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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