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치의 세상 톺아보기
왜 카페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까? 본문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주 이런 장면을 마주한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아무 말도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들.
노트북은 켜져 있지만 손은 키보드 위에 놓이지 않고, 휴대폰은 가방 속에 묻힌 채 그저 앉아 있는 모습.
처음엔 무언가를 기다리나 싶었고, 잠시 자리를 지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들은 변함없이 거기 있다.
그들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어쩌면 조금 부럽기까지 한 모습.
‘나도 저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요즘 사람들은 왜 카페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까?
그건 단순한 게으름도, 무료함도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작고 조용한 ‘저항’일지도 모른다.

🧠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시대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게을러?”
아직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MZ세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믿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무기력하거나 멍한 상태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쉴 틈 없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되찾기 위한 ‘의식적인 정지’**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면을 켜고, 수많은 알림을 확인하며 살아간다.
어디서든 연결되어 있고, 항상 대기 상태로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려야 한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정보를 소비하고 반응하고 또 피드백을 보내야 한다.
그런 와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그야말로 정신을 위한 에어포켓 같은 것이다.
디지털 디톡스, 무자극 브이로그, 미니멀한 삶, 번아웃이라는 단어들이 유행처럼 퍼지는 이유도 결국은 같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반응하며 살아왔기에, 이제는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 카페를 찾는 사람들, 그들은 지금 가장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돌보고 있는 중이다.
☕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심리적 은신처’
왜 하필 카페일까? 집에서 쉬면 되지, 공원에서 멍 때려도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건 카페가 주는 특유의 ‘적당한 거리감’ 때문일 것이다.
집은 너무 익숙해서 집중하기 어렵고,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서 심리적으로 불편하다.
반면 카페는 딱 알맞은 소음과 온도, 거리감이 있다.
카페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지만, 서로에게 개입하지 않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누구도 누구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단지 각자의 목적대로 이 공간을 사용한다.
이 자유롭고도 단절된 공존의 분위기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준다.
‘누군가와 함께 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곳, 그것이 바로 요즘 카페가 가진 가장 특별한 매력이다.
게다가 ‘카페 효과(Coffee shop effect)’라는 심리학 용어도 있다.
적당한 백색소음이 뇌의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조용한 집이나 도서관보다 사람들의 소음이 섞인 카페에서 더 잘 집중된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 공간은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다.
이곳은 오늘날의 도심 속 명상 공간, 심리적 은신처 그리고 자기만의 리듬을 회복하는 회복의 장소다.
🌿 멍 때리기, 현대인의 명상법
한때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릴 정도로, 멍한 상태는 이제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되었다.
바쁘고 빠르게만 흘러가는 세상에서, 의도적으로 ‘멍’을 선택하는 이들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조용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이때 우리는 마음의 소음을 걷어내고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카페에서 멍하니 있는 10분, 30분, 길게는 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들.
하지만 그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그들은 그 안에서 감정을 정리하고, 머릿속을 비우고,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조용히 채우고 있다.
그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야말로, 가장 많은 것을 회복하는 시간인 셈이다.
한 직장인은 이런 말을 했다.
“회사에서는 내 시간표라는 게 없어요.
다른 사람 일정에 맞추고, 지시 받고, 보고하느라 하루가 끝나요.
그런데 카페에서 멍하니 있는 30분은 유일하게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되는 시간이에요.”
이처럼 멍한 시간은 현대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명상법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따뜻한 위로일지 모른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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